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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의 타히티 기행’

“나는 평화 속에서 존재하기 위해, 문명의 손길로부터 나 자신을 자유롭게 지키기 위해 떠난다.” 1891년,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1903년)은 남태평양의 고도 타히티로 향하는 해군 함정에 몸을 실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넓고 푸른 바다, 때묻지 않은 원시적 생명력이 출렁거리는 타히티. 오염된 문명을 거부하고 원초적 아름다움을 갈구했던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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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는 고갱을 만남으로써 예술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부각됐고, 고갱은 타히티에서 그의 강렬한 미술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고갱과 타히티. 그 운명적인 만남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감동적이다. 대체 타히티는 어떤 곳이기에 고갱을 그렇게 빨아들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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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는 남태평양 중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는 표주박 모양의 작은 섬이다. 크기는 제주도의 5분의 3 정도. 표주박 모양 가운데 큰 쪽은 타히티 누이(Nui, 크다는 뜻), 작은 쪽은 타히티 이티(Iti, 작다는 뜻)라고 한다.

해발 2천200미터가 넘는 아오라이산으로 펼쳐진 열대 우림, 깊은 계곡과 폭포, 짙은 녹음, 그리고 태양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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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는 그래서 ‘남태평양의 낙원', ‘비너스의 섬'이라 불린다. 고갱은 그 완벽한 풍광에 매료된 것이다. 운명이었을까. 고갱의 유년기, 청년기는 바다와 태양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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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노아 노아(향기로운 향기로운)’

1848년 정치적 격변기에 태어난 고갱은 부모를 따라 페루에서 6년간 망명 생활을 해야 했고 17세 이후엔 견습 선원이 돼 바다에서 생활했다. 어두운 망명의 그늘은 그로 하여금 태양에 대한 갈망을 키우도록 했고, 선원 생활은 바다의 장엄함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1871년 24세 때 증권거래소에 취직한 고갱은 짬짬이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1876년 처음으로 살롱에 출품하고 세잔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 1883년 35세 때 드디어 그림에만 전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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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고흐와의 만남이 시작되고 남프랑스의 아를에서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고흐와 고갱은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성격이었고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고갱의 삶은 경제난의 연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혼란 속에서 문명에 대한 혐오감은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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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커지면 커질수록 태양과 바다, 그림에 대한 열망도 더욱 커지고, 1891년 고갱은 드디어 모든 것을 버리고 타히티로 몸을 던진다.



Tahiti island



‘고갱의 타히티 기행'은 고갱이 1891년 타히티에 처음 도착해 2년 동안 지내면서 기록했던 글을 모은, 일종의 기행문집이다. 원 제목은 ‘노아 노아(Noa Noa)’. 타히티 마오리족의 말로 ‘향기로운 향기로운'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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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타히티에서 만났던 마오리족 원주민들의 일상과 내면, 그들이 지닌 원시적 생명력의 아름다움, 식민지인으로서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단함 등 타히티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그들과 함께했던 고갱의 고뇌와 갈등, 원주민과의 사랑과 이별이 때론 격렬하게 때론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타히티의 아름답고 강렬한 풍광이 책갈피 사이로 문득문득 빛을 발한다.

여기 수록된 삽화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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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삽화엔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의 1차 체류를 마치고 1895년 귀국해 원고와 삽화를 엮어 책으로 출간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출판계는 수채화 삽화와 목판화가 너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했다. 고갱은 결국 친구의 도움을 얻어 자비로 출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삽화는 실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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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은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돼 오다가 1951년 한 차례 공개됐을 뿐 평소 접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이 책이 번역 출판될 때도 삽화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5년 존 밀러에 의해 오세아니(Oceanie)판이 나왔다. 여기엔 수채화와 목판화 대부분이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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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로 오세아니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서문이다. 고갱의 흔적을 찾기 위해 타히티를 찾았을 때의 에피소드와 느낌을 적은 짧은 글이지만 고갱에 대한 감정은 절절하다. ‘고갱은 지금 내 서재에 있다'는 마지막 문구가 짙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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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지금 내 서재에 있다’

책의 이야기는 1891년 6월 8일, 63일간의 항해 끝에 타히티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고갱은 실망부터 하게 된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유럽화한 파페에테의 도시 모습 때문이다.

고갱은 이렇게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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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내가 떨쳐버렸다고 생각한 유럽이었다. 식민지풍의 경박한 분위기, 유럽의 습관·유행·악덕이 있는 곳.”

아쉬움 속에 그는 유럽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 한적한 시골 오두막집을 찾아 정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13살 된 원주민 소녀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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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처녀와의 생활은 문화적 차이, 성격의 차이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갈등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낙원의 이브인 그녀의 향기에 취해 버리고 만다.

고갱은 타히티 밤의 고요를 배우고 스스로 야만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식량이 떨어진 어느 날,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곤 ‘야만인보다 열등한 문명인'이라고 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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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과 타히티는 동의어

동시에 원주민과 어울리고 타히티의 전설을 들으며 조금씩 타히티 사람이 돼 간다. 아오라이산을 오르고 그곳에서 노동을 하면서, 바다에 나가 다랑어를 잡으면서, 마타이에아·아티아·파오네·타라바오 등 타히티 섬의 곳곳을 오가면서 타히티의 진정한 모습을 배워나간다. 그리곤 그림을 생각한다. ‘왜 나는 태양이 만들어낸 장관을 캔버스에 그리는 걸 주저했을까'라고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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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표현하기를 두려워하는 유럽 민족의 모습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그렇게 태양의 세례를 받고 남태평양의 푸르름에 취하면서 고갱은 생명력 넘치는 화가가 돼 갔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던 19세기 말, 문명의 중심지였던 유럽을 버리고 원시의 섬으로 떠났던 고갱. 이 책에서 만나는 고갱의 삶과 예술은 남태평양 바다에 부딪혀 출렁이는 은빛 햇살처럼 투명하고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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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환상의 섬 타히티는 지금도 여전히 고갱과 동의어다. 고갱의 화집 한 권 손에 들고 그 섬에 가고 싶다. 고갱의 흔적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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